나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하풍리 라는 곳이 내 고향이다.
어릴적
어릴적 나의 놀이라곤 몇 안되는 마을 친구들이랑 동살미(마을앞 작은 동산), 아첨바(우리집 앞 공터), 낙동강, 들판에서 뛰어 놀았다.
모래사장에서 야구해봤나? 엄청 힘들다.
지금 집에 내려가서 보면 우리가 어떻게 아첨바에서 뛰어 놀았을까 할 정도록 공간이 작다. 승룡차 6대 정도 주차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근데 여기서 20명 가까운 아이들이 매일 뛰어 놀았다. 술래잡기, 깡통차기, (이젠 이름마져 기억나지 않을) 놀이들을 하면서 놀았다.
고향, 삶
고향이란 추억이 어려있는 곳이다. 그 어느 누군가가 함부로 뺏어 갈수도 없고 뺏어 가서도 안되는 그런 곳이다. 떠난자에겐 추억이지만 남은 자에겐 삶의 터전이자 생명 그 자체이다. 나에게 하풍리는 기억속에 남아서 나에게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곳이고 나의 아버지에게 하풍리는 농사를 지을수 있는 땅이 있는, 아버지 삶의 전부인것이다.
현실
현실을 생각한다면... 현실을 생각한다면... 현상태에서 미군 기지는 용산에서 어느곳으로 이동을 해야한다. 강국 미국과 약속하길 넒은 땅에 미군 기지 건설을 약속한 것이다. 우리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서울 시민들에게 용산 등의 미군 기지 땅을 서울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주기로 약속을 했다.
다수의 도시 사람들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 소수의 대추리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이것이 절자에 의해 그들을 이해 시킨 정당한 희생인가에 대해선 부정적인 아니 할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들은 정부 당국으로부터 그 어떠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도 못하였을뿐더라 그 결정 과정에 전혀 참여를 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뜻을 전하지도 못하였고 일방 통보만 받은것이다. 그 과정을 이렇게 글로 정확히 적을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이 삶의 터전을 잃을것이라는건 알고 있다.
대추리, 하풍리
나는 비겁하다. 정말로 하풍리가 '대추리'가 아니었기를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곳이 하풍리가 아니었기에 나는 이렇게 침묵하고만 있다. 학교에서, 책에서 행동하는 정의에 대해서 수 없이 배우고 읽었지만 정작나는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한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아마 마찬가지 일것이다. 당신이 침묵하고 무언의 묵인을 하고 있는 이유도 그곳이 자신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그 고향 지금도 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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