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의 가치

 나의 고향은 경북 예천이다. 20년 가까이 시골에 살았다. 고등학교 3년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보냈다.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나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 친척집에서 살기
 대학교 3학기 동안은 친척집에서 살았다. 사촌동생이랑 살면서 1시간 거리를 통학을 했다. 매일 2시간 동안 이동을 해야한다는 것이 매우 힘드고 비효율적이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식비, 생활비, 월세 등을 아낄 수 있었다. 이때만해도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첫 전세를 구하다
 전역 후, 여동생이랑 같이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나의 남은 학기가 여동생보다 많았기에 내가 다니는 대학교 근처로 집을 구하게 되었다. 근데, 원룸밖에 없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은 동생과 같이 살길 바라셨다. 하지만, 방 2개짜리 달리 적당한 금액의 방은 없었다. 사립대를 다니는 아들딸의 1년 등록금만 1500만원이 되었기에 방을 구하는데 많은 돈을 쓸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첫 전세금은 4천이었다. 계약서에 싸인을 하려고 하자 집 주인은 전세금을 천 만원 올렸다. 7월 땡볕에서 근 한 달간 고생을 하면서 찾은 집이었기에 정말로 울름이 나올뻔 했다. 더 이상 적당한 집을 찾기가 힘들어서 결굴 4800만원에 계약을 했다.

 그리 좋은 집은 아니다. 오르막 길가에 있어서 차 소리가 그대로 들릴뿐더러 방음은 전혀 되지 않는 나무 창문이었다. 욕실엔 창문도 없었고 수압은 상당히 낮았다. 여름엔 찜통이 되었고 겨울엔 난방비가 20만원이 나와도 춥기만 했다. 그래도 서울땅에 이만한 집이 어디있을가 하는 생각에 살았다. 2년째가 되던 해, 집주인이 전세금을 1200만원 올려달라고 했다. 6천이다. 이때, 정몽준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서 재개발 공략을 남발하던 때였다. 결국 25%의 집값을 올려주었다. 집은 점점 낡아가는데 전세값은 25%가 뛰었다.

# 이사를 하려 한다
 동생과 나의 회사 위치 문제로 인해서 이사를 하려고 한다. 집을 내 놓았다. 금세 집은 나갔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서 기존의 집들이 다 허물어 졌다. 남은 집은 전세값이 올랐다. 학교를 다니면서 모은 돈이랑 회사를 다니면서 모은돈 을 합치고 그동안 부모님이 힘들게 모은 돈으로 1억이 조금 넘는 돈을 만들었다. 근데, 이사할 곳이 없다. 처음엔 1억 2천으로 찾았다. 없다. 천 만원을 올렸다. 집은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과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 고를 수 있는 집이 없다. 맘에 조금 드는 집이 있어 하루 동안 잠시 생각을 했는데, 그 새 집이 나가버렸다. 집이 없다. 집이 없는것은 아니다. 나의 집이 없을 뿐이다.

# 집을 비워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한달 남았다. 좋은 집을 구하는게 아니라, 내가 살 집을 구해야 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그런 집을 1억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 나의 고향에선 이 정도 돈이면 집을 한 채 사고도 남는 돈이다. 서울에선 1억이 큰 돈이 아니다. 1억이란 돈을 만들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 4명이서 몇 년을 고생하면서 모은 돈이지만, 집값은 이 노력을 비웃듯 다시 가격이 올랐다.

 1억이라는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매우 많다. 직장인이 1억을 만드는덴 수년이 걸릴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1억을 만들기 위해서 수십년을 고생하셨다. 수 십 년을 고생하고도 쉴만한 곳을 찾기가 너무 힘든 현실이 서글프다. 부모님에게 이 돈으로 집을 못구했다고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부모님에게 상처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죄송할 뿐이다.


ps. 서울에 지하도로를 만든다고 한다. '또 집값 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건설사는 3~40평형 대형 아파트만 만들어서 집값을 올린다. 소형 주택은 점점 사라져 소형주택의 전세가격도 오른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꺼질것 같지 않다. 지금과 같이 대형주택의 공급이 대세를 이루는한 주택의 가격은 끝없이 오를 것이다. 걍~ 내 몫도 없는데, 부동산 버블이나 확 터졌으면 좋겠다. 젠장!